가장 많이 받는 한마디가 이것입니다. 도장님, 제가 음기가 센가요.
묻는 분 자신도 그게 무엇을 가리키는지 대개 말하지 못합니다. 손발이 한 해 내내 차다는 이야기일 때도 있고, 요즘 무얼 해도 어긋난다는 이야기일 때도 있고, 사는 방이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때도 있습니다.
저는 대개 곧바로 답하지 않습니다. 손발이 한 해 내내 차다는 조목은 먼저 의사에게 가시라고 권합니다. 그건 제 직분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는 이 두 글자를 갈라 보아야 합니다. 술수에서 쓰는 법에 비추면 이 한마디는 애초에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두 글자는 본래 산비탈 이야기입니다
음과 양은 처음에 한 산의 두 면입니다. 해가 드는 면을 양이라 하고 해를 등진 면을 음이라 합니다. 이 두 글자의 왼쪽에는 오늘도 언덕 부 변이 붙어 있고 그 변은 본래 흙산을 그린 것입니다. 물가로 밀면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이 양이고 산의 북쪽과 물의 남쪽이 음이 됩니다.
중국의 옛 지명에는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낙양은 낙수의 북쪽, 강음은 장강의 남쪽, 화음은 화산의 북쪽 기슭, 형양은 형산의 남쪽. 지명에 이 두 글자가 들었으면 그 땅이 산과 물의 어느 쪽인지 대체로 거슬러 셈할 수 있습니다. 산 쪽 이치는 곧습니다. 빛을 받느냐 등지느냐의 차이뿐입니다. 물 쪽이 왜 거꾸로인지는 설명이 몇 가지 있어, 하곡 지형으로 푸는 것, 옛사람이 표를 세워 그림자를 쟀다는 것으로 푸는 것. 다 들어 봤지만 납득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거슬러 셈하다 틀리는 일도 있습니다. 이천 년 사이 강은 물길을 바꾸고 산은 이름을 바꾸었는데 지명만 옛날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시드니의 지명은 아주 다른 얼개라 영국인의 성과 작위를 줄곧 붙여 놓은 것입니다. Macquarie, Darling, Bligh. 거리 이름은 그 거리 자체와 아무 상관이 없어 통째로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참조가 바뀌면 쪽도 바뀝니다
「산의 해 드는 면」이라는 출발점에는 자주 빠뜨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상대적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산이라도 이쪽이 양이라는 것은 반대쪽에 견주어 하는 말이고, 산을 통째로 들판 가운데 놓고 견주면 이번에는 솟은 쪽이 되어 평지에 견주어 양이 됩니다. 참조를 하나 바꾸면 쪽이 바뀝니다. 손을 쓴 예가 가장 쓸 만합니다. 손등은 손바닥에 견주어 양이고 하늘을 향한 면이 양, 아래를 향한 면이 음입니다. 그런데 같은 팔을 몸통에 견주면 음이 됩니다. 사지가 끝이고 몸통이 밑동이며 끝은 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누면 낮이 양이고 밤이 음인데, 낮의 한 단 안에서도 또 나뉘어 오전은 기가 위로 가니 양, 오후는 아래로 거두니 음이 됩니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양인 시진도 한 해 안에 넣으면 통째로 음의 한 단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겨울 한낮의 해는 역시 그날 가장 성한 때이지만 한 해에 놓으면 거기는 음 쪽 반년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양에 속한다」고만 해서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에 견주어서인지를 반드시 보태야 합니다. 수강생이 가장 자주 막히는 것이 이 고비입니다. 다들 물건마다 고정된 신분증을 내주고 싶어 하십니다. 양인 것은 양, 음인 것은 음, 그렇게 한 번에 끝내고 싶어 하십니다. 내줄 수 없습니다. 이 한 쌍의 말이 하는 일이 그게 아닙니다.
한쪽만으로는 서지 못합니다
외로운 음은 낳지 못하고 홀로 된 양은 자라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도덕경』 제42장에는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으며 충기로써 화를 이룬다」고 합니다. 만물은 둘 다 지니고 있고 순수한 것은 없습니다.
소장은 이어진 양입니다
한 해의 추위와 더위도, 하루의 낮과 밤도, 이 양끝이 이어서 한쪽이 늘고 한쪽이 주는 것이지 중간에 탁 하고 바뀌는 스위치가 없습니다. 동짓날은 음이 극에 이르지만 양은 이미 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동지에 한 양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한마디는 남반구에서 먼저 하나 물어야 합니다. 몇 월에 떨어지는가. 제 갈래에서는 절기 이름은 그대로 두고 적용을 맞바꿉니다. 시드니의 십이월에서 해가 긴 며칠을 하지의 한 단으로 쓰고 유월의 가장 짧은 며칠을 동지로 씁니다. 한 양이 나는 그 점은 여기서 유월에 떨어집니다. 왜 그렇게 가르는지는 『이십사절기, 남반구에서는 어떻게 하나』에 자세히 적었습니다. 경계는 천성은 그대로이고 지리괘가 바뀐다는 한 조목이며 추위와 더위는 땅의 층에 속합니다. 동업자 중에는 북반구의 달로 판단하는 분도 있고 저마다 할 말이 있습니다.
시드니의 겨울은 정말 추운 것이 두세 주뿐이고 석 달의 미지근한 날씨에 싸여 있습니다. 해마다 유월이면 북쪽에서 막 오신 분이 이건 겨울이 아니라고 제게 말합니다.
전화. 극에 이르면 뒤집힙니다
하지는 해가 가장 긴데 음은 그날부터 일어납니다. 동지는 그 반대입니다. 주먹을 하는 사람은 이 층에 몸의 감각이 있습니다. 형의는 기락을 말하고 일어남이 양, 떨어짐이 음이며, 떨어짐이 다한 자리에는 다음 일어남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까다로운 것은 눈금입니다. 「사물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극이 어디인가. 어디까지 가야 극인가. 옛 책에 눈금은 없고 저 자신도 내놓지 못합니다. 실제로 해 보면 대개 나중에야 저것이 극점이었구나 하고 가려내게 되니, 한가운데 있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층을 예측 도구로 삼아 몇 년에 반드시 되돌아온다, 몇 월에 바닥을 친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못 하고 남이 할 수 있다고도 그리 믿지 않습니다.
「양일주」는 반을 세우는 이야기이지 성격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주에서 누가 양일주라는 것은 뜻이 아주 좁습니다. 일주의 천간이 갑병무경임 다섯 중 하나라는 것이고 을정기신계면 음일주입니다. 열 천간이 차례로 양, 음으로 놓이니 그렇게 가르는 것뿐입니다.
쓰임은 전부 반 위에 있습니다. 십신은 이것이 있어야 비로소 갈립니다. 나와 같은 것, 내가 낳는 것, 내가 극하는 것, 나를 극하는 것, 나를 낳는 것. 다섯 관계가 있고 각 묶음을 다시 일주와 음양이 같은지 다른지로 둘로 갈라 비견과 겁재, 식신과 상관, 편재와 정재, 칠살과 정관, 편인과 정인이라는 열 이름이 됩니다. 십신의 층은 따로 한 편에서 갈랐으니 여기서는 펴지 않습니다.
성격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양」을 그대로 외향적이고 말 많고 일 욕심 많다로 읽고 「음」을 내향적이고 예민하고 생각이 많다로 읽는 분을 적잖이 만났습니다. 요즘 말의 「양광」 「음침」은 사람을 형용하는 말이고 술수의 음양은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 벌의 말이 각자 다른 일을 하는데 부딪힌 것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음택」 두 글자에 놀라는 분이 많습니다
집을 보는 이 일에서는 산 사람이 사는 것을 양택이라 하고 조상을 위해 장지를 택하는 갈래를 음택이라 합니다. 이 두 글자는 짝지어 쓰는 것이고 하나는 삶에 대하고 하나는 죽음에 대합니다. 그뿐입니다. 양택과 음택이 각각 무엇을 보는지, 왜 음택 갈래를 맡지 않는 선생이 많은지는 풍수 자주 나오는 질문 편에 있습니다.
물으러 오시는 분 중에 「음택」 두 글자만 듣고 몸이 굳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아예 「묏자리 쪽」이라고 바꿔 말해 설명 한 번을 덜 때도 있습니다.
영어 쪽이 더 까다롭습니다
영어 독자는 이 고비가 중국어 독자보다 어렵습니다. yin과 yang이 영어로 들어갈 때 거의 그대로 dark와 light, negative와 positive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티셔츠와 문신의 그 흑백 물고기에 붙는 문구는 대개 「어둠과 빛의 균형」이고, 거기에 the dark side라는 말이 대중문화에서 갖는 무게가 더해져 음은 완전히 나쁜 쪽 절반으로 읽히게 되었습니다.
negative와 positive 묶음은 특히 머리가 아픕니다. 한편으로 값어치 판단을 되돌려 놓고 다른 한편으로 전하의 양음과 부딪힙니다. 많은 분이 가진 「양인 것이 좋은 것」이라는 직감은 아마 거기서 왔을 것입니다.
첫머리의 한마디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제가 음기가 센가요」에는 대개 이렇게 답합니다. 그건 술수의 말이 아닙니다. 술수로 내리려면 먼저 무엇에 견주어서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주의 어느 행이 반 전체에서 왕한지 쇠한지를 물으시는 것이면 반을 봐야 합니다. 방이 해가 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면 현장에서 잴 수 있고 어떻게 고칠지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세다」는 글자를 한 사람에게 붙이는 일은 저는 붙이지 않고 누구를 대신해 그런 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물으신 분이 한마디 더 보태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그런 것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하고 답합니다. 대개는 아직 흡족해하지 않으십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