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챗으로 사진이 한 장 옵니다. 여덟 글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어느 무료 작괘 앱이 뽑은 것입니다. 아래에 한마디가 붙어 있습니다. 도장님, 제가 언제 돈을 벌 수 있는지 봐 주세요.
부모님 생년월일을 보내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요즘 어르신 건강이 좋지 않으니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는지 봐 달라는 것입니다. 이쪽은 일률로 받지 않습니다. 이유는 뒤에 적겠습니다.
호주에서 일해 온 이 몇 해 동안 상담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이건 제가 못 봅니다」였습니다. 그러니 아예 분명히 적어 두겠습니다.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을 줄 수 없는지.
일하는 것은 어느 한 글자인가
여덟 글자 가운데 정말로 일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일주 위에 얹힌 천간이고 일원이라 하며 명주 본인을 나타냅니다. 나머지 일곱 글자는 모두 그것을 둘러싼 것들로 받치는 것, 극하는 것, 새게 하는 것입니다. 반을 본다는 것은 이 한 글자가 일곱 글자 사이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천간이 열, 지지가 열둘. 본래 옛 중국이 시간에 번호를 매기려고 쓴 부호이고 하나 둘 셋 넷과 본질적 차이가 없습니다. 현묘한 부분은 뒷사람이 위에 보탠 것입니다. 눈금은 여기서 정해집니다.
읽히는 것
성정의 바탕. 성미가 급한지 느린지. 제 생각이 세서 누가 말려도 꿈쩍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가 얇아 마지막에 말한 사람 말이 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한 발도 내딛지 않아 옆에서 재촉해도 소용없는 꼴도 있습니다. 이 층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사주는 본래 사람이 어떻게 짜였는지를 그리는 것이고, 어떻게 짜였는가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읽히는 것은 기울기입니다. 성미 급한 사람은 급한 채로 시원시원할 수도 있고 급한 채로 여기저기 일을 낼 수도 있습니다. 사주가 말하는 것은 급하다는 것까지이고 급해서 무엇이 나오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오행이 어느 쪽으로 치우쳤는가. 금목수화토가 여덟 글자 안에 고르게 놓였는지. 목과 화만 그득해 메마른 반도 있고 금과 수뿐이라 찬 반도 있습니다. 치우침이 세면 사람은 같은 턱에서 거듭 넘어집니다. 메우는 방향은 꽤 실제적인 데로 내려앉습니다. 어떤 갈래 일을 할지, 방의 어느 쪽에서 잘지, 그날 가장 중한 한 건을 몇 시에 처리할지. 개광한 팔찌를 사서 차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물건은 제가 팔지 않습니다.
대운과 유년의 결. 여기가 가장 쓸모 있다고 봅니다. 사람의 살림은 일정한 속도가 아닙니다. 무엇을 해도 밀리는 몇 해가 있고 아무리 힘을 써도 제자리인 몇 해가 있습니다. 사주는 이 결의 대략적인 단락을 보여 줍니다. 어느 구간이 밖으로 벌릴 때이고 어느 구간이 거둘 때이며 어느 구간이 심하게 어긋나는 때인지.
맞는 업과 맞지 않는 업의 방향. 이 한 조목이 가장 오해를 받습니다. 사주에서 「당신은 금융에 맞는다」는 읽히지 않습니다. 그런 어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움직이는 쪽인지 고요한 쪽인지, 앞줄에 설지 뒤에 있을지, 오랜 관계로 먹는지 한 건씩으로 먹는지, 한 건의 결과가 오래 드러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시드니에서 화인 분들이 물어 오시는 것은 돌고 돌아 몇 가지뿐입니다. 부동산 중개 면허를 딸지, 카페를 하나 낼지, 간호 공부로 옮길지. 이 셋은 전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중개는 날마다 남에게 보이면서 동시에 다음 달에 계약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를 견뎌야 합니다. 카페는 체력에다 날마다 현금 흐름을 지켜보는 일, 그걸 해마다 이어 가면서 물리지 않는 것. 간호는 다른 쪽 끝이라 거의 다 절차입니다. 사주는 이 층에서라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업이 더 버는지는 저보다 회계사에게 물으십시오.
왜 단언을 주지 않는가
한마디를 원해서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몇 년에 돈을 버는지, 될지 안 될지, 이 사람과 혼인해도 되는지.
아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한마디보다 많습니다. 한마디가 답하는 것은 「언제」뿐입니다. 그런데 거기 앉아 계신 분이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대개 시간이 아닙니다. 이 일을 왜 그토록 원하는가, 그리고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손에 넣는가입니다.
단언이 껄끄러운 까닭은 그것이 눌러앉기 때문입니다. 서른다섯에 고비가 하나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뒤 칠팔 년 동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전부 그 고비 쪽으로 붙여 이해됩니다. 그리고 정말 서른다섯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보라, 역시, 하게 됩니다. 이때 당신은 이미 자기 살림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마디를 살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를 준 사람은 진작 잊었고 당신은 아직 그 안에 삽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한마디를 갈라서 말합니다. 왜 지금 이것을 서두르는가. 반 위에서는 대개 어느 힘이 밀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재성이 움직였는지, 관살이 누르고 있는지, 이 두 해 비겁이 너무 무거워 곁의 사람들이 다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 이것이 보이면 적어도 자기가 무엇과 겨루고 있는지는 알게 됩니다.
다음은 길입니다. 어느 해가 순해서 빨리 가고 벌려도 좋은지. 어느 해는 조심해 속도를 늦추고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은지. 어느 구간이 밖으로 나가기에 맞고 어느 구간이 손에 든 것을 지켜 뿌리를 깊이 내리기에 맞는지. 그 아래는 손댈 자리입니다. 용신이 어느 행에 있느냐로 힘 쓸 데가 정해지고, 업종과 방위와 어떤 사람과 손잡을지까지 그 선을 따라 밀어 갈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합치면 「서른여섯」이라는 세 글자보다 훨씬 쓸모 있습니다. 게다가 거기엔 판결이 없습니다. 다 듣고 나서도 걷는 것은 여전히 당신 자신입니다.
읽히지 않는 것
구체적인 사건. 언제 해고되는지, 며칠에 사고가 나는지, 복권 번호가 무엇인지. 마지막 것은 해마다 진지하게 물어 오십니다. 해마다 모른다고 답합니다. 저 자신은 해까지만 판단하고 세밀하게 해야 달까지이며 그 아래로는 제 정확도를 믿지 않습니다. 동업자 중에 유일까지 판단하는 분도 있지만 저에게는 그런 힘이 없고 설득된 적도 없습니다. 어떤 한 건을 해야 하는지, 언제 결과가 나는지를 묻고 싶으시면 그건 점의 일이고 연장이 다릅니다.
남의 사사로움. 배우자나 동업자의 생년월일을 보내며 이 사람이 미덥냐고 물으시는 일이 있습니다.
보지 않습니다.
생사화복. 떨어진 곳에서 사람의 생사를 단정하는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못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이곳의 규범으로, 호주에서는 돈 내는 손님에게 이런 단언을 하면 책임을 지게 됩니다. 건드리지 않습니다.
시각이라는 이 고비는 정말 어렵습니다
상담이 중간에 멎는다면 대개 여기서 멎습니다.
대륙에서 나고 연세 드신 분들은 손에 있는 것이 부모님 기억의 한마디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늘이 훤해질 무렵, 저녁 먹고 얼마 안 되어, 어머니는 오후라고 했다. 어느 것이든 두 시진에 걸칠 수 있는 말입니다.
호주에서 난 젊은 세대는 좀 낫습니다. 병원 기록에 대개 시각이 있습니다. 다만 어느 주에서 났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에는 서머타임이 있고 퀸즐랜드에는 없습니다. 팔십 년대 말에서 구십 년대 초에 세 여름만 해 보고 주민투표로 부결되었습니다. 서호주도 영 육 년부터 영 구 년까지 세 해만 해 보고 역시 주민투표로 부결되었습니다. 시드니라 해도 시작과 끝 날짜가 시월 첫 일요일에서 사월 첫 일요일로 바뀐 것은 이천팔 년부터이고 그 전에는 시월 마지막 일요일에서 삼월 마지막 일요일이었습니다. 이천 년 올림픽이 있던 해에는 팔월 말에 시작했습니다. 제 작괘 도구에서도 이 표를 찾는 것이 가장 번거롭고 가장 틀리기 쉽습니다. 무료 앱은 이 한 걸음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지지마다 장간을 다 늘어놓는 것은 기꺼이 해 주고 저보다 세밀하게 늘어놓지만, 그 시각이 정말 확실하냐고는 한 번도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태양시. 중국은 전역이 베이징 시간 하나여서 신장에서 난 분을 시계 시각 그대로 세우면 진태양시와 두 시간 넘게, 한 시진으로도 안 되게 어긋납니다. 호주는 훨씬 작습니다. 시드니는 동부 표준시 기준 자오선과 일 도 남짓밖에 차이 나지 않아 경도 몫은 접으면 오 분이 못 됩니다. 다만 진태양시에는 균시차도 있어 한 해 동안 마이너스 십사 분에서 플러스 십육 분 사이를 오갑니다. 십일월 초에는 둘을 합쳐 이십 분이 되기도 합니다. 대개는 판단에 걸리지 않지만 시진 경계에 걸려 있을 때는 순순히 계산합니다. 퍼스는 경도가 사 도 차이라 이 한 항목만으로 십육 분 반입니다.
시각이 한 칸 어긋나면 어떻게 되는가. 가벼운 쪽은 시주가 통째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주가 보는 것은 만년의 한 구간과 자녀의 궁이니 이 둘이 바로 못 쓰게 됩니다. 무거운 쪽은 일원의 강약이 뒤집히는 것입니다. 용신도 바뀌고 반 한 장의 독법이 거꾸로 됩니다.
그래서 시각이 분명하지 않을 때 제 방식은 후보를 두셋 세우고 이미 일어나 날짜가 확실한 큰일과 맞춰 보는 것입니다. 몇 년에 혼인했는지, 몇 년에 일을 바꾸거나 나라를 옮겼는지, 몇 년에 집안 사람을 보냈는지, 몇 년에 몸이나 돈에 큰일이 있었는지. 네다섯 건 맞춰 보면 대개 한 후보가 뚜렷이 더 붙습니다.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후보가 그 일들을 똑같이 무리 없이 설명해 버리면, 그건 본래 시주의 관할이 아니었다는 뜻이고 거슬러 미는 길은 거기서 끊깁니다. 그러면 저는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시각을 맞추지 못하겠습니다, 시주에 걸린 것들은 말씀드리지 않고 나머지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업자 중에 그렇게 하지 않는 분도 있다는 걸 압니다. 맞추지 못해도 판단해 버립니다. 어차피 손님 쪽에 맞춰 볼 방도가 없으니까요. 저는 못 합니다.
또 하나, 저 자신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자시는 한밤을 걸치므로 밤 열한 시에서 열두 시까지 이 한 시간의 일주를 오늘로 치는지 내일로 치는지가 집집이 꽤 갈립니다. 저는 배울 때의 배열로 가지만 다른 쪽 이치도 꺾지 못하니 제가 반드시 옳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이 시각에 나신 분을 실제로 만나면 둘 다 세워 놓고 한 번 보고, 차이가 크면 그 사실을 상대에게 분명히 알립니다.
제가 하지 않는 부분
어떤 초자연적 효과도 약속하지 않고 사람의 생사화복도 단정하지 않습니다. 질병에 걸린 것은 의사에게, 법률은 변호사에게, 투자와 사업 판단은 자격 있는 회계사나 자문에게. 사주 쪽에서 제가 말하는 것은 기울기와 결뿐이고, 이 둘은 사주가 정말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경계를 듣고 그러면 사주는 별 쓸모가 없지 않냐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지금 눈앞의 삼 년이 안으로 거둘 때임을 알고 있으면, 적어도 이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내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