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한 권 들고 오셔서 어느 쪽을 펴고 한 구절을 짚으며 무슨 뜻이냐고 물으시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대개 먼저 표지까지 되돌려 누구의 주인지 어떤 판본인지 보고 나서, 펴 두었던 데로 돌아와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물으신 구절은 「경」에 없고 「전」에 있습니다, 이걸 쓴 사람은 경을 쓴 사람보다 수백 년 뒤 사람입니다.
상대는 대개 한 박자 멈추십니다.
현학을 부린다고 여기시는 일이 잦습니다만, 이것이 이 책을 읽을 때의 첫 문턱이고 여기를 넘지 못하면 뒤가 전부 어지럽습니다.
한 권 안에 두 권이 들어 있습니다
경 쪽 절반은 육십사괘입니다. 괘마다 괘사가 한 구절, 여섯 효에 각각 효사가 한 구절, 합해서 삼백팔십사 조목이고 그밖에 건괘의 용구와 곤괘의 용륙이 있습니다. 이 부분 문장은 지독히 짧고, 짧다 못해 끊겨 있어 오늘날 읽어 낼 수 없게 된 구절도 있습니다. 거듭 나오는 것은 길, 흉, 회, 인, 무구, 이섭대천, 이견대인 같은 판단어와 상투어입니다. 이 글자들을 쓴 사람들은 누군가 문장을 감상해 주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맞대어 판단할 수 있는 한 구절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전 쪽 절반은 열 편이고 합해서 십익이라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공자에게 돌려 왔지만 지금 연구자들 다수는 전국에서 한초에 걸쳐 차례로 쓰였고 한 사람 손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 열 편이 하는 일은 해석이고, 육십사 개 부호를 천지와 사시와 나아가고 물러남에 관한 도리로 풀어냅니다. 누구나 끌어오는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 한다」는 『계사』에 나오는 말이지 경에는 없습니다.
한쪽은 점사, 한쪽은 의리. 연대도 목적도 맞물리지 않습니다.
지금 아무 『주역』이나 한 권 사서 펴면 「건. 원형이정. 단왈… 상왈…」로 되어 있어 경과 전이 섞여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 배열은 한에서 위 사이에 차츰 굳어진 편집 체재이지 본래 모습이 아닙니다.
출토된 것들이 이 이야기를 더 못 박았습니다
칠십 년대에 창사 마왕퇴에서 나온 백서 가운데 『주역』이 한 부 있습니다. 그 괘 차례는 오늘 본과 전혀 다릅니다. 오늘 본은 건곤에서 시작해 기제미제로 끝나지만, 백서는 여덟 경괘를 차례로 상괘에 두고 각각 여덟 하괘를 짝지어 벌여 놓은 것이어서, 오늘 본처럼 둘씩 짝이 되고 뒤집지 않으면 바뀌는 규칙성이 없습니다. 괘 이름 글자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상하이박물관이 소장한 전국 초죽서 가운데도 『주역』의 남은 조각이 있습니다. 칭화대학이 소장한 전국 죽간에는 『서법』이라는 한 편이 있는데, 이쪽은 또 다른 한 벌의 괘 세우고 판단하는 방법으로 쓰는 부호도 판단법도 『주역』과 맞물리지 않습니다.
이것들을 나란히 놓으면 알게 되는 바는 아주 소박합니다. 선진의 점서는 한 집이 아니었고 『주역』의 본문도 오랫동안 굳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의 괘 차례는 전해 온 여러 배열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가장 이른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상수와 의리, 한에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말다툼
경을 읽는 갈래를 뒷사람은 상수라 하고 전을 읽는 갈래를 의리라 합니다.
상수는 괘상을 갈라 씁니다. 효의 자리, 상괘 하괘의 관계, 호체, 납갑, 괘기. 한대 사람들은 이 한 벌을 지극히 정밀하게 다듬었습니다. 맹희, 경방, 우번이 이 갈래입니다. 목적은 곧습니다.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의리 갈래의 돌아서는 자리는 왕필에게 있습니다. 그는 『주역』에 주를 달면서 한인의 상수 장치를 거의 다 옆으로 치워 두고 괘의 뜻과 사람의 일만 말했습니다. 뒷사람은 그 주장을 네 글자로 추려 득의망상이라 합니다. 정이가 이 갈래를 이어 『이천역전』을 썼고 송대에는 정통 독법이 되었습니다. 주희는 재미있는 예외입니다. 이학을 말하면서도 『역』은 본래 복서의 책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읽으려면 먼저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갈림길은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시드니 중국어 서점 선반에 있는 『역경』 책들은 거의 다 의리 갈래여서 수양을 말하고 경영을 말하고 인생을 말합니다. 괘를 세워 판단하는 쪽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쓰인 것이 흐릿해서 결국 사람에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책들은 대개 타로와 별자리 운세와 같은 줄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 번 말했지만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습니다.
「철학이 알맹이고 점은 찌꺼기」라는 가름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이것입니다. 『역경』의 값어치는 철학에 있고 점치는 부분은 옛사람의 인식이 모자라 남긴 미신이니 읽을 때 덜어 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신앙과 상관없이 본문 자체에 있습니다. 경의 절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사입니다. 점을 빼면 그 절반은 서지 못합니다. 빼고 남는 것은 실제로는 다른 책입니다.
거꾸로 가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수만 굴리고 전을 읽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괘는 빨리 세우고 판단하는 말은 지극히 꽉 차 있으며 사람의 생사화복까지 정합니다. 이건 호주에서는 일이 됩니다. 말을 꽉 채우면 오도하는 진술에 해당하는 조항을 밟기 쉽습니다. 질병, 법률, 돈에 걸린 판단은 저는 일률로 의사와 변호사와 회계사에게 가시게 합니다. 보고서에 이 한 구절은 늘 들어갑니다. 체재를 갖추려고 넣는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은 일하면서 둘 다 씁니다. 괘를 세워 일을 판단하는 것은 상수 한 벌의 규범이고 절차가 있으며 나중에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상대가 놓인 처지를 설명하고 어떻게 처신할지 말할 때는 전의 층 말을 씁니다. 전은 본래 한 괘를 어떻게 읽어 분수를 알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 둘은 맞서지 않습니다. 앞과 뒤일 뿐입니다.
마왕퇴 백서에는 공자가 역을 말한 한 편이 있는데, 대의는 그가 중히 여긴 것은 덕의이고 축복은 그 뒤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구절은 성인조차 점치지 않았다는 증거로 자주 끌려옵니다. 그러나 이 한 대목이 보여 주는 것은 앞뒤입니다. 덕의가 앞, 축복이 뒤. 둘 다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진법 이야기
저는 코드를 쓰기 때문에 이 질문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역경』이 이진법의 기원인가, 컴퓨터의 조상인가.
라이프니츠가 복희육십사괘차서도를 본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에 있던 선교사가 보낸 것이고 그가 이진법에 대해 쓴 것도 사실입니다. 음효와 양효 두 상태, 여섯 효로 한 괘, 육십사는 꼭 여섯 자리 이진법의 모든 조합입니다. 구조 이야기로는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인과가 거꾸로입니다. 이진법은 라이프니츠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고, 괘도를 보고 옛사람에게도 같은 뜻이 있었구나 하여 기뻐했다, 그뿐입니다.
부호화 부분은 한마디면 끝납니다. 시간이 든 것은 그 뒤에 매달린 찾아보기 표 쪽이고, 괘마다 효마다 짝지어진 그 한 구절은 수백 년에 걸쳐 한 구절씩 모인 것입니다.
제가 정하지 못한 데
괘 차례가 하나입니다. 오늘 본은 건곤에서 기제미제까지 벌여 있고 『서괘전』이 한 줄로 이어지는 해석을 주어 한 괘가 다음 괘를 낳는 모양이라 읽으면 둥글게 맞아떨어집니다. 그런데 백서의 괘 차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의 이 차례에는 본래 뜻이 있었는가, 아니면 뒷사람이 이미 있는 차례에 맞춰 도리를 지어낸 것인가. 여러 해 읽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뒤쪽으로 기울지만 증거를 내놓지는 못합니다.
또 하나, 줄곧 납득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한 괘에서 여러 효가 함께 변할 때 어느 효로 판단하는가. 주희는 『역학계몽』에서 한 벌의 규범을 보였고 다른 유파는 또 다른 규범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스승에게 받은 방법으로 판단하고 이 몇 해 불편함이 없었지만, 그러면 왜 이 한 벌이고 다른 한 벌이 아닌지 물으시면 답하지 못합니다.
어느 절반부터 읽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일률적인 조언이 없습니다. 단괘를 배우고 싶으시면 먼저 경을 씹으십시오. 주 없이 한 번 통으로 읽고 서둘러 주로 가지 마십시오. 도리 쪽만 읽고 싶으시면 『계사』와 『문언』으로 바로 들어가십시오. 그 두 편이 가장 잘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