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통독 강좌에서는 첫 시간에 펴자마자 이 한 구절입니다.
수강생 가운데 중국어 속에서 자란 층은 대개 귀에 익습니다. 너무 익어서 이제 한 문장이라기보다 간판 같습니다. 얌차 집이나 인테리어 가게, 어떤 분은 위챗 서명 아래에 걸어 둡니다. 이 층도 지나온 길이 제각각이라 광둥에서 오신 분은 어릴 적 집에서 어른이 한마디 하시는 걸 들은 정도, 대만에서 오신 분은 국어 시간에 원문을 외웠고,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분 중에는 화문 독립중학을 나와 번체자를 저보다 빨리 읽는 분도 있습니다. 공통된 것은 개강 전에 꼭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 구절은 압니다, 도는 말할 수 없다는 거죠.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거의 모든 분이 여기서 멈춘다는 점입니다. 영역으로 읽어 오신 층은 다른 데서 걸립니다. 그분들이 읽은 것은 The Dao that can be told is not the eternal Dao이고, 첫인상은 이 책이 첫머리부터 꽤 신비롭다, 뒤로 갈수록 더 신비로워지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 장은 대개 두 차례에 나눠 다루는데도 못 끝낼 때가 잦습니다. 열몇 글자 안에 멈춰 서서 짚어야 할 데가 셋 있습니다. 휘를 피해 고친 글자 하나, 아직 결판나지 않은 쉼표 하나, 그리고 요즘 말에 닳아 버린 「현(玄)」 하나입니다.
통행본의 「상」은 본래 「항」
먼저 이것부터. 이건 본문의 일이지 어떻게 이해하느냐와는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는 것은 삼국 왕필 계통의 본이고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왕퇴 한묘에서 나온 백서 『노자』에서는 이 두 구절이 「도가도야 비항도야, 명가명야 비항명야」입니다. 어기의 「야」가 늘어 문장의 뼈가 드러나고, 더 중한 것은 「상」이 거기서 「항」으로 쓰여 있다는 점입니다.
글자를 고친 까닭은 피휘입니다. 한 문제의 이름이 유항이어서 그가 자리에 오른 뒤로 「항」 자는 문서에서 피해야 했고 뜻이 가까운 글자로 바꾸었습니다. 바꾼 것이 「상」입니다. 같은 무리의 고침 속에서 북악 항산도 상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서를 조금 읽으신 분이면 아실 것입니다. (항아가 본래 항아(恒娥)로 쓰였다가 이것도 같은 식으로 고쳐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으나 자세히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상」으로 바뀌고 나서 이 구절은 오늘의 귀에 맛이 변했습니다. 「상」은 요즘 말에서 먼저 떠오르는 뜻이 평상, 통상이라 많은 분이 처음 읽을 때 「평상의 도가 아니다」로 읽고, 노자가 고급한 도와 보통의 도를 가르는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항」은 그 샛길을 내지 않습니다. 항구하고 불변한다는 뜻뿐이고 가르는 것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책 속 모든 「상」 자가 이 내력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아직 말다툼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이 두 구절뿐입니다.
영어 독자는 이 한 조목에서 오히려 득을 봅니다. 영역은 대체로 eternal, constant, unchanging으로 되어 있어 통행본을 돌아 백서의 층을 그대로 내놓은 셈이 됩니다.
두 번째 「도」
「도가도」 석 자에 「도」가 둘입니다. 첫째는 명사, 둘째는 동사이고 주류는 언설로 풉니다. 왕필 주의 대의는, 입에 올릴 수 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이미 「일을 가리키고 꼴을 지어」 구체적인 한 가지 일, 한 가지 꼴로 떨어져 버렸으니 그 항상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도」를 좇아 행함, 밟아 행함으로 읽는 분도 있습니다. 이 갈래는 강의에서 한마디 짚고 넘어갑니다. 깊이 들어가면 제 발밑이 미덥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강생이 정말로 캐묻는 것은 다음 걸음입니다. 말할 수 없다면 뒤의 오천 자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는 노자 자신이 답했습니다. 제25장에서 「물건이 있어 섞여 이루어져 천지보다 앞서 났다」는 그것에 대해 그는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자를 지어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지어 대라 한다」고 말합니다. 「억지로」가 요긴합니다. 마지못해 붙였다는 것입니다. 손에 든 연장이 쓸 만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집어 들었습니다. 다른 연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머리의 이 구절을 입을 열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읽으시는 분도 잦습니다. 오천 자를 쓴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을 리 없습니다. 이 장은 말에 계측 범위의 선을 긋는 것이고, 선을 넘으면 눈금이 미덥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쉼표를 어디에 찍는가
이어지는 두 구절은 통행본에서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로 적힙니다. 옛 책에는 본디 구두점이 없었고 어떻게 끊는지는 뒷사람이 보탠 것인데, 여기에는 끊는 법이 둘이고 이르는 곳이 꽤 다릅니다.
하나는 「무명은 천지의 시작, 유명은 만물의 어미」로 끊습니다. 주어가 「무명」과 「유명」이고, 천지가 막 일어났을 때는 붙일 이름이 없고 만물이 하나씩 나고서야 이름이 내려앉을 자리가 생긴다는 읽기입니다. 이것은 앞 구절 「명가명 비상명」과 이음이 좋고 장 전체의 무게가 「명」에 걸립니다.
또 하나는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하고, 유는 만물의 어미를 이름한다」로 끊습니다. 「무」와 「유」가 각각 한 낱말이 되고 「명」이 동사가 되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른다는 뜻이 됩니다. 이 읽기는 제1장을 그대로 본체론의 개막으로 밀어 올리고 제40장의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고 유는 무에서 난다」와도 맞물립니다. 송대 사람 중에 이미 이렇게 끊은 예가 있고 근현대에도 이렇게 끊는 본이 적지 않습니다.
같은 선택을 다음 구절에서 한 번 더 해야 합니다. 「늘 욕심 없이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을 내어 그 끝을 본다」로 할 것인가, 「늘 무로써 그 묘함을 보고자 하고, 늘 유로써 그 끝을 보고자 한다」로 할 것인가. 앞의 읽기는 보는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의 이야기로, 욕심 없이 보는 것과 욕심을 띠고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줄기입니다. 뒤의 읽기는 여전히 「유」와 「무」 한 쌍의 이야기가 됩니다. 앞 구절에서 어느 쪽을 골랐느냐에 이 구절도 대개 따라갑니다.
이 갈림은 영어 강의에서는 감출 수 없습니다. 중국어는 구두점을 찍지 않고 넘어갈 수 있지만 영어는 그러지 못합니다. 역자는 먼저 구문 하나를 정해야 문장이 섭니다. 붓을 내린 시점에 독자를 대신해 선택을 끝내 버린 것이고, 독자 쪽은 대개 누가 자기 대신 골랐다는 것을 모릅니다. 강의에서는 영역을 가져온 수강생끼리 손에 든 판본을 서로 보게 합니다. 한 방 안에 두 가지 읽기가 나란한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잦습니다.
칠판에는 둘 다 적고 먼저 첫째를 말합니다. 까닭은 본문 자체가 내는 신호가 그쪽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앞 구절에서 이름을 막 말했고 다음 「이 둘은 함께 나와 이름을 달리한다」에서 다시 이름으로 돌아옵니다. 다만 둘째 쪽이 의리로는 힘이 있고, 노자가 뒷글에서 왜 그토록 「유」와 「무」를 다루는지를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노자의 본뜻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이 장을 여러 해 말해 오면서 말할수록 잘라 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진작 결론이 났다고 누가 말하거든 그 사람 말은 조금 덜 믿으셔도 됩니다.
또 한 군데, 제가 내내 매끄럽게 말하지 못하는 데가 있습니다. 「이 둘」의 「둘」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무명」과 「유명」인가, 「묘」와 「요」인가, 「유」와 「무」인가. 셋 다 들어 봤고 셋 다 앞뒤가 맞습니다. 제 차례가 되면 제가 고른 끊기를 따라 밀고 가지만, 그러면 왜 나머지 둘이 아니냐고 캐물으시면 속이 든든하지 않다고밖에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현」은 현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끝은 「함께 이를 현이라 한다. 현하고 또 현하니 뭇 묘함의 문이다」입니다.
「현」 자는 요즘 말에 닳아 버렸습니다. 오늘날 「현묘하다」고 하면 허하고 땅에 발이 붙지 않고 말 못 할 것을 억지로 말한다는 뉘앙스를 띱니다. 옛 글자는 그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현은 색입니다. 검정에 붉은 기가 조금 도는 색으로, 천을 거듭 물들여 꽤 깊이 들인 몇 번째에야 나오는 색입니다. 눈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 깊습니다.
그러니 「현하고 또 현하다」는 깊은 데서 더 깊은 데로, 눈이 따라가지 못할 때까지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뭇 묘함의 문」의 문도 실물이고 입구이며 사람은 거기를 지나갑니다.
첫 시간은 대개 여기서 끝납니다
현 자까지 말하면 대개 시간이 됩니다.
책을 챙기면서 묻는 수강생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느 끊기로 읽어야 합니까. 제 답은 이렇습니다. 먼저 첫째로 책 전체를 통하고 다음에 둘째로 통하십시오. 맛이 바뀌는 장이 몇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꿈쩍하지 않는다는 걸 아시게 됩니다. 이 논쟁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직접 가늠하실 수 있습니다.
제1장에서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대개 건너뛰고 제8장, 제11장, 제64장쯤부터 읽으시라고 권합니다. 물, 수레바퀴, 안을 수 있는 굵기의 나무. 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읽기가 든 뒤에 제1장으로 돌아가면 훨씬 통합니다. 이 책은 쉬운 순서로 놓여 있지 않습니다.